귀뚜라미야 미안해
박종태.퍼프
집에 혼자 있던 때였다. 오랜만에 친한 형들도 다녀갔고, 학년 회의도 끝난 뒤였다. 한숨 돌리고 커피나 마실까 싶어 냉장고로 향했다. 물을 올리고 얼음을 컵에 담던 중이었다. 냉장고가 있는 오른쪽으로 시선이 향했다가, 컵이 있는 반대편으로 옮겨 갔다. 그때 왼쪽 아래, 초점도 잡히지 않은 시야각의 끝에 무언가 작은 점 하나가 스쳤다. 바닥에 던져 둔 장바구니 끝단에 작은 점이 신경 쓰여 다시 눈을 돌렸다. 그곳엔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친구와 내 발 사이 간격은 체감 30cm쯤 되었을까. 순간 여러 생각이 동시에 빠르게 떠올랐지만, 몸은 그것들을 충분히 이행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한 충격과 긴장, 순간적인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비명, 이 모든 것들이 일제히 이뤄지기에는 내 몸은 너무 둔해진 듯했다. 난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어?” 한마디만 내뱉고 잠시 동안 그 친구를 지켜봤다. 그 친구는 연신 더듬이를 흔들며, 가방 근처에 널브러뜨려 놓은 빨래 더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두 걸음 뒤로 물러나 침착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단순하고 정직했다.
“야, 너 여기 어떻게 들어왔니?”
진심으로 궁금했다. 난 여름에 에어컨을 끄지 않는다. 잠깐 환기할 때가 아니고서는 하나 있는 창문을 여는 일도 없다. 덕분에 모기들과는 담을 쌓고 무탈하게 이번 여름을 나는가 싶었더니, 저 또래에 비해 건장한 체격의 친구는 어쩌다 이 집 안에 들어오게 된 걸까. 너는 어째서 내게로 다가오는 것일까.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저 녀석이 시야에 남아 있을 때 해결해야 했다. 귀뚤귀뚤 소리를 서라운드로 들으면서 잠들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두루마리 휴지를 길게 뽑아 평평하게 만들어 손에 쥐었다. 위에서 적당히 덮은 다음 크게 다치지 않는 선에서 잡아 밖에 풀어주면 되겠거니 했다. 조심스레 그 친구에게 다가섰다. 긴 더듬이와 긴 다리가 점점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제발 뛰지 마라, 제발 뛰지 마라, 제발 뛰지 마라, 제발 뛰지 마라, 제발 뛰지 마라…’
그렇다. 온갖 침착한 척은 다했지만 두려웠다. 저 까슬까슬한 다리와 몸이 내게 닿는 감촉이, 지레 겁먹고 내려치면 들릴 바삭한 소리가, 으깨진 후 코끝에 닿을 비릿한 풀 냄새가.
‘제발! 내가 널 죽이지 않게 해줘!.’
속으로 되뇌며 천천히 그 친구에게 다가섰다. 체감되는 녀석의 크기가 점점 커질수록 털이 서고 에어컨 바람은 점점 차가워졌다.
‘폴짝, 탁!, 툭….’ 찰나의 순간이었다. 내 손의 그림자가 녀석을 가려 갈 때쯤, 결국 녀석은 뛰어버렸다. 옷가지에 다리가 걸려서일까, 10cm 정도 살짝 뛰어올랐지만, 하필 그 앞엔 겁 많은 만 23세 성인 남성이 내지른 손바닥이 있었다. 너무 놀라서일까,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기합과 함께 내지른 싸대기에 녀석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도망치려 한 녀석도 생존 본능이었겠지만, 나 또한 생존 본능이었을까. 두 튼실한 다리로 뛰어오른 새까만 녀석과 눈이 마주치자, 휴지고 뭐고 녀석을 향해 손을 날려버렸다. 불쌍한 녀석.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는 녀석의 다리 두 쪽이 근처에 떨어져 있었다. 녀석은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싶었다. 내가 조금 더 용감했더라면, 밖에 풀어줄 수 있었더라면, 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불가능해진 순간, 책임감을 가지고 녀석의 몸과 파편을 휴지로 끌어모아 그 위에 책 한 권을 조심히 올렸다. 천천히, 확실하게.
‘우저적.’
징그러움에 대한 혐오감과 미안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호들갑인가 싶어 스스로 화도 조금 났다. 조심스레 책을 치우니, 그곳엔 귀뚜라미’였던 것’이 있었다. 젠장, 비릿했다. 비릿하다 못해 역할 정도의 풀, 피, 내장 등의 냄새가 강하게 코끝에 들어왔다. 구역감이 올라왔다. 평소 비위가 강한 편이었지만, 유독 역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렇게 만든 주범이어서일까. 염불을 외우며 남은 녀석의 요소들을 휴지로 모았다. 녀석은 마지막까지 내 손아귀 속에서 움직이는 듯했다. 모은 휴지를 몇 번 더 감싸 애도하는 마음으로 힘차게 합장했다. 녀석의 마지막 향이 아직도 코끝에 남아 있는 듯했고, 꼼지락꼼지락하던 움직임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손바닥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귀뚜라미야, 미안해…”
노란 레몬을 상상하지 말라 했을 때, 상상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고 누가 그랬던가.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녀석의 감촉이 남아, ‘귀뚤귀뚤’하는 환청을 상상으로 만들어냈다. 온몸이 싸늘해져서 곤두선 신경이 풀렸다. 생각을 너무 많이 했더니 조금 더웠다. 긴장이 풀리니 숨을 몰아쉬고는 커피를 들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귓가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차가운 커피를 들이키자 속이 차가워지면서 조금은 귀뚜라미 생각이 잠잠해졌다. 조금 더 진정이 되고 나니 에어컨 바람이 알맞게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기 모드의 컴퓨터 화면이 다시금 켜지고,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난 그 친구를 만나 심장이 뛰고, 몸이 얼어붙고, 요동치다 끝끝내 이별한 15분간의 만남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귀뚜라미야… 미안해…
집에 혼자 있던 때였다. 오랜만에 친한 형들도 다녀갔고, 학년 회의도 끝난 뒤였다. 한숨 돌리고 커피나 마실까 싶어 냉장고로 향했다. 물을 올리고 얼음을 컵에 담던 중이었다. 냉장고가 있는 오른쪽으로 시선이 향했다가, 컵이 있는 반대편으로 옮겨 갔다. 그때 왼쪽 아래, 초점도 잡히지 않은 시야각의 끝에 무언가 작은 점 하나가 스쳤다. 바닥에 던져 둔 장바구니 끝단에 작은 점이 신경 쓰여 다시 눈을 돌렸다. 그곳엔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친구와 내 발 사이 간격은 체감 30cm쯤 되었을까. 순간 여러 생각이 동시에 빠르게 떠올랐지만, 몸은 그것들을 충분히 이행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한 충격과 긴장, 순간적인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비명, 이 모든 것들이 일제히 이뤄지기에는 내 몸은 너무 둔해진 듯했다. 난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어?” 한마디만 내뱉고 잠시 동안 그 친구를 지켜봤다. 그 친구는 연신 더듬이를 흔들며, 가방 근처에 널브러뜨려 놓은 빨래 더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두 걸음 뒤로 물러나 침착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단순하고 정직했다.
“야, 너 여기 어떻게 들어왔니?”
진심으로 궁금했다. 난 여름에 에어컨을 끄지 않는다. 잠깐 환기할 때가 아니고서는 하나 있는 창문을 여는 일도 없다. 덕분에 모기들과는 담을 쌓고 무탈하게 이번 여름을 나는가 싶었더니, 저 또래에 비해 건장한 체격의 친구는 어쩌다 이 집 안에 들어오게 된 걸까. 너는 어째서 내게로 다가오는 것일까.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저 녀석이 시야에 남아 있을 때 해결해야 했다. 귀뚤귀뚤 소리를 서라운드로 들으면서 잠들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두루마리 휴지를 길게 뽑아 평평하게 만들어 손에 쥐었다. 위에서 적당히 덮은 다음 크게 다치지 않는 선에서 잡아 밖에 풀어주면 되겠거니 했다. 조심스레 그 친구에게 다가섰다. 긴 더듬이와 긴 다리가 점점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제발 뛰지 마라, 제발 뛰지 마라, 제발 뛰지 마라, 제발 뛰지 마라, 제발 뛰지 마라…’
그렇다. 온갖 침착한 척은 다했지만 두려웠다. 저 까슬까슬한 다리와 몸이 내게 닿는 감촉이, 지레 겁먹고 내려치면 들릴 바삭한 소리가, 으깨진 후 코끝에 닿을 비릿한 풀 냄새가.
‘제발! 내가 널 죽이지 않게 해줘!.’
속으로 되뇌며 천천히 그 친구에게 다가섰다. 체감되는 녀석의 크기가 점점 커질수록 털이 서고 에어컨 바람은 점점 차가워졌다.
‘폴짝, 탁!, 툭….’ 찰나의 순간이었다. 내 손의 그림자가 녀석을 가려 갈 때쯤, 결국 녀석은 뛰어버렸다. 옷가지에 다리가 걸려서일까, 10cm 정도 살짝 뛰어올랐지만, 하필 그 앞엔 겁 많은 만 23세 성인 남성이 내지른 손바닥이 있었다. 너무 놀라서일까,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기합과 함께 내지른 싸대기에 녀석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도망치려 한 녀석도 생존 본능이었겠지만, 나 또한 생존 본능이었을까. 두 튼실한 다리로 뛰어오른 새까만 녀석과 눈이 마주치자, 휴지고 뭐고 녀석을 향해 손을 날려버렸다. 불쌍한 녀석.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는 녀석의 다리 두 쪽이 근처에 떨어져 있었다. 녀석은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싶었다. 내가 조금 더 용감했더라면, 밖에 풀어줄 수 있었더라면, 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불가능해진 순간, 책임감을 가지고 녀석의 몸과 파편을 휴지로 끌어모아 그 위에 책 한 권을 조심히 올렸다. 천천히, 확실하게.
‘우저적.’
징그러움에 대한 혐오감과 미안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호들갑인가 싶어 스스로 화도 조금 났다. 조심스레 책을 치우니, 그곳엔 귀뚜라미’였던 것’이 있었다. 젠장, 비릿했다. 비릿하다 못해 역할 정도의 풀, 피, 내장 등의 냄새가 강하게 코끝에 들어왔다. 구역감이 올라왔다. 평소 비위가 강한 편이었지만, 유독 역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렇게 만든 주범이어서일까. 염불을 외우며 남은 녀석의 요소들을 휴지로 모았다. 녀석은 마지막까지 내 손아귀 속에서 움직이는 듯했다. 모은 휴지를 몇 번 더 감싸 애도하는 마음으로 힘차게 합장했다. 녀석의 마지막 향이 아직도 코끝에 남아 있는 듯했고, 꼼지락꼼지락하던 움직임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손바닥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귀뚜라미야, 미안해…”
노란 레몬을 상상하지 말라 했을 때, 상상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고 누가 그랬던가.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녀석의 감촉이 남아, ‘귀뚤귀뚤’하는 환청을 상상으로 만들어냈다. 온몸이 싸늘해져서 곤두선 신경이 풀렸다. 생각을 너무 많이 했더니 조금 더웠다. 긴장이 풀리니 숨을 몰아쉬고는 커피를 들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귓가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차가운 커피를 들이키자 속이 차가워지면서 조금은 귀뚜라미 생각이 잠잠해졌다. 조금 더 진정이 되고 나니 에어컨 바람이 알맞게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기 모드의 컴퓨터 화면이 다시금 켜지고,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난 그 친구를 만나 심장이 뛰고, 몸이 얼어붙고, 요동치다 끝끝내 이별한 15분간의 만남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귀뚜라미야… 미안해…
귀뚜라미야 미안해
박종태.퍼프
집에 혼자 있던 때였다. 오랜만에 친한 형들도 다녀갔고, 학년 회의도 끝난 뒤였다. 한숨 돌리고 커피나 마실까 싶어 냉장고로 향했다. 물을 올리고 얼음을 컵에 담던 중이었다. 냉장고가 있는 오른쪽으로 시선이 향했다가, 컵이 있는 반대편으로 옮겨 갔다. 그때 왼쪽 아래, 초점도 잡히지 않은 시야각의 끝에 무언가 작은 점 하나가 스쳤다. 바닥에 던져 둔 장바구니 끝단에 작은 점이 신경 쓰여 다시 눈을 돌렸다. 그곳엔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친구와 내 발 사이 간격은 체감 30cm쯤 되었을까. 순간 여러 생각이 동시에 빠르게 떠올랐지만, 몸은 그것들을 충분히 이행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한 충격과 긴장, 순간적인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비명, 이 모든 것들이 일제히 이뤄지기에는 내 몸은 너무 둔해진 듯했다. 난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어?” 한마디만 내뱉고 잠시 동안 그 친구를 지켜봤다. 그 친구는 연신 더듬이를 흔들며, 가방 근처에 널브러뜨려 놓은 빨래 더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두 걸음 뒤로 물러나 침착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단순하고 정직했다.
“야, 너 여기 어떻게 들어왔니?”
진심으로 궁금했다. 난 여름에 에어컨을 끄지 않는다. 잠깐 환기할 때가 아니고서는 하나 있는 창문을 여는 일도 없다. 덕분에 모기들과는 담을 쌓고 무탈하게 이번 여름을 나는가 싶었더니, 저 또래에 비해 건장한 체격의 친구는 어쩌다 이 집 안에 들어오게 된 걸까. 너는 어째서 내게로 다가오는 것일까.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저 녀석이 시야에 남아 있을 때 해결해야 했다. 귀뚤귀뚤 소리를 서라운드로 들으면서 잠들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두루마리 휴지를 길게 뽑아 평평하게 만들어 손에 쥐었다. 위에서 적당히 덮은 다음 크게 다치지 않는 선에서 잡아 밖에 풀어주면 되겠거니 했다. 조심스레 그 친구에게 다가섰다. 긴 더듬이와 긴 다리가 점점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제발 뛰지 마라, 제발 뛰지 마라, 제발 뛰지 마라, 제발 뛰지 마라, 제발 뛰지 마라…’
그렇다. 온갖 침착한 척은 다했지만 두려웠다. 저 까슬까슬한 다리와 몸이 내게 닿는 감촉이, 지레 겁먹고 내려치면 들릴 바삭한 소리가, 으깨진 후 코끝에 닿을 비릿한 풀 냄새가.
‘제발! 내가 널 죽이지 않게 해줘!.’
속으로 되뇌며 천천히 그 친구에게 다가섰다. 체감되는 녀석의 크기가 점점 커질수록 털이 서고 에어컨 바람은 점점 차가워졌다.
‘폴짝, 탁!, 툭….’ 찰나의 순간이었다. 내 손의 그림자가 녀석을 가려 갈 때쯤, 결국 녀석은 뛰어버렸다. 옷가지에 다리가 걸려서일까, 10cm 정도 살짝 뛰어올랐지만, 하필 그 앞엔 겁 많은 만 23세 성인 남성이 내지른 손바닥이 있었다. 너무 놀라서일까,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기합과 함께 내지른 싸대기에 녀석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도망치려 한 녀석도 생존 본능이었겠지만, 나 또한 생존 본능이었을까. 두 튼실한 다리로 뛰어오른 새까만 녀석과 눈이 마주치자, 휴지고 뭐고 녀석을 향해 손을 날려버렸다. 불쌍한 녀석.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는 녀석의 다리 두 쪽이 근처에 떨어져 있었다. 녀석은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싶었다. 내가 조금 더 용감했더라면, 밖에 풀어줄 수 있었더라면, 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불가능해진 순간, 책임감을 가지고 녀석의 몸과 파편을 휴지로 끌어모아 그 위에 책 한 권을 조심히 올렸다. 천천히, 확실하게.
‘우저적.’
징그러움에 대한 혐오감과 미안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호들갑인가 싶어 스스로 화도 조금 났다. 조심스레 책을 치우니, 그곳엔 귀뚜라미’였던 것’이 있었다. 젠장, 비릿했다. 비릿하다 못해 역할 정도의 풀, 피, 내장 등의 냄새가 강하게 코끝에 들어왔다. 구역감이 올라왔다. 평소 비위가 강한 편이었지만, 유독 역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렇게 만든 주범이어서일까. 염불을 외우며 남은 녀석의 요소들을 휴지로 모았다. 녀석은 마지막까지 내 손아귀 속에서 움직이는 듯했다. 모은 휴지를 몇 번 더 감싸 애도하는 마음으로 힘차게 합장했다. 녀석의 마지막 향이 아직도 코끝에 남아 있는 듯했고, 꼼지락꼼지락하던 움직임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손바닥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귀뚜라미야, 미안해…”
노란 레몬을 상상하지 말라 했을 때, 상상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고 누가 그랬던가.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녀석의 감촉이 남아, ‘귀뚤귀뚤’하는 환청을 상상으로 만들어냈다. 온몸이 싸늘해져서 곤두선 신경이 풀렸다. 생각을 너무 많이 했더니 조금 더웠다. 긴장이 풀리니 숨을 몰아쉬고는 커피를 들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귓가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차가운 커피를 들이키자 속이 차가워지면서 조금은 귀뚜라미 생각이 잠잠해졌다. 조금 더 진정이 되고 나니 에어컨 바람이 알맞게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기 모드의 컴퓨터 화면이 다시금 켜지고,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난 그 친구를 만나 심장이 뛰고, 몸이 얼어붙고, 요동치다 끝끝내 이별한 15분간의 만남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귀뚜라미야… 미안해…
귀뚜라미야 미안해
박종태.퍼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