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과 사유; 자기계발

김수빈

최근 아트코리아 랩에서 진행하는 <감(感): 감각하는 사유의 기술> 이라는 제목의 워크샵을 다녀왔다. 감각하는 사유의 기술은 무엇인가? 이 클럽에서는 ‘창조는 편집’이라는 말처럼 정보와의 관계를 재편집 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정리법 젠틸렌스키에 대한 설명과 정보를 비선형적으로 구성하여 시각적 자료로 재편집해주는 들뤠즈ai 라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설명한다. 파티에서 진행하는 ‘모험유닛’이라는 수업에서 ‘편집의 편집’을 다룬것처럼 정보를 편집하는 사유법에 대한 논의가 이곳저곳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첫 수업에서 클럽원끼리 각자 자기소개를 하던 중 시각, 청각적 감각을 동시에 다루는 공감각에 대해 논의하고싶다는 한 구성원의 얘기를 듣고 ‘앗차’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또한 시각, 청각, 촉각 등의 오감을 다루는 내용만을 궁금해하고 있었기에 정보의 재편집이라는 주제가 사뭇 낯설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젠틸렌스키 정리법이 감각에 관한 내용일까? 편집을 편집한다는 말은 무슨얘기 일까? 라는 질문들에 답을 얻지 못했던 중, 오감만이 감각이 아니니 사유의 감각도 감각의 일종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닿게 되었다.

 

몸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감정은 몸에서 느끼는 감각이다. 마음이 찢어지는듯한 슬픔, 심장이 쿵쾅거리며 느껴지는 긴장감, 손발끝이 간질간질 하며 느껴지는 기분좋은 설렘 등 우리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각들은 감정과 연결되어있다. 외부의 정보는 오감으로 느껴지고 뇌에서 정리된 정보를 통해 몸의 감각, 즉 감정으로 결과를 가지게 된다. 그 감정을 다시 뇌에서 처리하여 외부의 감각자극으로 - 말, 행동,- 우리는 소통을 하게 된다. 여기서 사유는 우리의 감정과, 표현을 처리하는 과정에 깊게 연계된다. 따라서 우리가 다른 사유를 함에 따라 감정과 표현이 달라지게 되는것이다. 물론 내가 어떤 다른 정신을 갖는다고 눈앞에 있는 빨간 사과가 갑자기 초록색 사과로 보이게 되지는 않을것이다. (향정신성 물질을 섭취하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나의 머리속에 있는 정보들이 나의 감정, 즉 몸의 감각에 영향을 미치게된다. 결국 사유를 달리하면 내가 느끼는 세상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불안장애 등의 문제로 상담을 오래 받았었다. 게슈탈트 기법, 인지행동 치료 등도 결국에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현재의 나에게 같은, 불쾌한/불리한 경험을 주는 트라우마 반응을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고 사고의 습관을 바꿈으로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사유의 변화가 실제 몸의 감각의 변화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사고의 변화로 인해 트라우마에서 사람들이 벗어날 수 있다면? 고통이 사라진다면? 미움도 사라지고 분노도 사라질수 있지 않을까? 분노가 사라지고 고통이 사라지면, 좋음과 싫음이 옅어진다면? 이원론적으로 나뉘어진 세상의 위계가 옅어진다면? 점점 옅어지고 흐려지는 위계와 경계위에서 얼마나 다양한 소통과 새로운 몸의 감각이 탄생 할 수 있을까?

 

요즘 성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생각 정리법, 혹은 철학자들의 말들이 많이 들려온다. 그리고 끝이없는, 성공이라는 알수없는 지점으로 향하기 위해 사람들이 정말 많은 노력하는것을 보아왔다. 나 또한 그랬다. 성공이 무엇인지 생각도 하지 않은채 방청소를 하고 미라클 모닝을 시도했다. 반복과 차이를 생각하며 머리속에서 뺑글뺑글 돌아가는 원통형을 상상했다. 언제 성공에 다다를지 모르니 쉬지않고 뺑글뺑글 돌았다. 그러다 너무 힘들어질때는 누워서 쉬었다. 누워서 쉬다보니 배도 고프고 심심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잠시 도는것을 멈추고 새벽에 케이크를 시켜먹기도 하고 옛날에 좋아했던 노래에 잠겨보기도 했다. 그러다 발끝에 느껴지는 이불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꼈는데, 문득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바람이 솔솔 불고 마루에서 이불은 배만 대충 덮고 가족들의 대화 소리를 들으면서 잠들기전 이불의 감촉이 생각났다. 그 뒤로 잠이 안오는 밤에는 이불을 발끝으로 살살 어루만지다 잠에 들었다. 그렇게 하나 둘 잊고있던 산에서 내려오는 풀냄새, 차가운 아침공기를 데우는 눈이 부신 햇빛, 지하철의 꿉꿉한 냄새를 기억하게 되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게 많았는지 잘 몰랐는데.. 하면서 문득 어떤 문장이 생각났다. 자기자신을 찾아나가는게 삶의 목적이자 여정이라고. 그렇다면 이건 좋은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뭘 자꾸 찾으라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뺑글뺑글 도는게 만약 목적이 있어야 한다면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걸 먼저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성공하기위한 습관이라는 유튜브 제목을 봐도 어지럽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 (근데 아직 편집의 편집은 현기증난다.)

 

최근 아트코리아 랩에서 진행하는 <감(感): 감각하는 사유의 기술> 이라는 제목의 워크샵을 다녀왔다. 감각하는 사유의 기술은 무엇인가? 이 클럽에서는 ‘창조는 편집’이라는 말처럼 정보와의 관계를 재편집 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정리법 젠틸렌스키에 대한 설명과 정보를 비선형적으로 구성하여 시각적 자료로 재편집해주는 들뤠즈ai 라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설명한다. 파티에서 진행하는 ‘모험유닛’이라는 수업에서 ‘편집의 편집’을 다룬것처럼 정보를 편집하는 사유법에 대한 논의가 이곳저곳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첫 수업에서 클럽원끼리 각자 자기소개를 하던 중 시각, 청각적 감각을 동시에 다루는 공감각에 대해 논의하고싶다는 한 구성원의 얘기를 듣고 ‘앗차’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또한 시각, 청각, 촉각 등의 오감을 다루는 내용만을 궁금해하고 있었기에 정보의 재편집이라는 주제가 사뭇 낯설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젠틸렌스키 정리법이 감각에 관한 내용일까? 편집을 편집한다는 말은 무슨얘기 일까? 라는 질문들에 답을 얻지 못했던 중, 오감만이 감각이 아니니 사유의 감각도 감각의 일종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닿게 되었다.

 

몸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감정은 몸에서 느끼는 감각이다. 마음이 찢어지는듯한 슬픔, 심장이 쿵쾅거리며 느껴지는 긴장감, 손발끝이 간질간질 하며 느껴지는 기분좋은 설렘 등 우리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각들은 감정과 연결되어있다. 외부의 정보는 오감으로 느껴지고 뇌에서 정리된 정보를 통해 몸의 감각, 즉 감정으로 결과를 가지게 된다. 그 감정을 다시 뇌에서 처리하여 외부의 감각자극으로 - 말, 행동,- 우리는 소통을 하게 된다. 여기서 사유는 우리의 감정과, 표현을 처리하는 과정에 깊게 연계된다. 따라서 우리가 다른 사유를 함에 따라 감정과 표현이 달라지게 되는것이다. 물론 내가 어떤 다른 정신을 갖는다고 눈앞에 있는 빨간 사과가 갑자기 초록색 사과로 보이게 되지는 않을것이다. (향정신성 물질을 섭취하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나의 머리속에 있는 정보들이 나의 감정, 즉 몸의 감각에 영향을 미치게된다. 결국 사유를 달리하면 내가 느끼는 세상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불안장애 등의 문제로 상담을 오래 받았었다. 게슈탈트 기법, 인지행동 치료 등도 결국에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현재의 나에게 같은, 불쾌한/불리한 경험을 주는 트라우마 반응을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고 사고의 습관을 바꿈으로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사유의 변화가 실제 몸의 감각의 변화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사고의 변화로 인해 트라우마에서 사람들이 벗어날 수 있다면? 고통이 사라진다면? 미움도 사라지고 분노도 사라질수 있지 않을까? 분노가 사라지고 고통이 사라지면, 좋음과 싫음이 옅어진다면? 이원론적으로 나뉘어진 세상의 위계가 옅어진다면? 점점 옅어지고 흐려지는 위계와 경계위에서 얼마나 다양한 소통과 새로운 몸의 감각이 탄생 할 수 있을까?

 

요즘 성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생각 정리법, 혹은 철학자들의 말들이 많이 들려온다. 그리고 끝이없는, 성공이라는 알수없는 지점으로 향하기 위해 사람들이 정말 많은 노력하는것을 보아왔다. 나 또한 그랬다. 성공이 무엇인지 생각도 하지 않은채 방청소를 하고 미라클 모닝을 시도했다. 반복과 차이를 생각하며 머리속에서 뺑글뺑글 돌아가는 원통형을 상상했다. 언제 성공에 다다를지 모르니 쉬지않고 뺑글뺑글 돌았다. 그러다 너무 힘들어질때는 누워서 쉬었다. 누워서 쉬다보니 배도 고프고 심심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잠시 도는것을 멈추고 새벽에 케이크를 시켜먹기도 하고 옛날에 좋아했던 노래에 잠겨보기도 했다. 그러다 발끝에 느껴지는 이불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꼈는데, 문득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바람이 솔솔 불고 마루에서 이불은 배만 대충 덮고 가족들의 대화 소리를 들으면서 잠들기전 이불의 감촉이 생각났다. 그 뒤로 잠이 안오는 밤에는 이불을 발끝으로 살살 어루만지다 잠에 들었다. 그렇게 하나 둘 잊고있던 산에서 내려오는 풀냄새, 차가운 아침공기를 데우는 눈이 부신 햇빛, 지하철의 꿉꿉한 냄새를 기억하게 되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게 많았는지 잘 몰랐는데.. 하면서 문득 어떤 문장이 생각났다. 자기자신을 찾아나가는게 삶의 목적이자 여정이라고. 그렇다면 이건 좋은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뭘 자꾸 찾으라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뺑글뺑글 도는게 만약 목적이 있어야 한다면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걸 먼저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성공하기위한 습관이라는 유튜브 제목을 봐도 어지럽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 (근데 아직 편집의 편집은 현기증난다.)

 

감각과 사유; 자기계발

김수빈

최근 아트코리아 랩에서 진행하는 <감(感): 감각하는 사유의 기술> 이라는 제목의 워크샵을 다녀왔다. 감각하는 사유의 기술은 무엇인가? 이 클럽에서는 ‘창조는 편집’이라는 말처럼 정보와의 관계를 재편집 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정리법 젠틸렌스키에 대한 설명과 정보를 비선형적으로 구성하여 시각적 자료로 재편집해주는 들뤠즈ai 라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설명한다. 파티에서 진행하는 ‘모험유닛’이라는 수업에서 ‘편집의 편집’을 다룬것처럼 정보를 편집하는 사유법에 대한 논의가 이곳저곳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첫 수업에서 클럽원끼리 각자 자기소개를 하던 중 시각, 청각적 감각을 동시에 다루는 공감각에 대해 논의하고싶다는 한 구성원의 얘기를 듣고 ‘앗차’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또한 시각, 청각, 촉각 등의 오감을 다루는 내용만을 궁금해하고 있었기에 정보의 재편집이라는 주제가 사뭇 낯설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젠틸렌스키 정리법이 감각에 관한 내용일까? 편집을 편집한다는 말은 무슨얘기 일까? 라는 질문들에 답을 얻지 못했던 중, 오감만이 감각이 아니니 사유의 감각도 감각의 일종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닿게 되었다.

 

몸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감정은 몸에서 느끼는 감각이다. 마음이 찢어지는듯한 슬픔, 심장이 쿵쾅거리며 느껴지는 긴장감, 손발끝이 간질간질 하며 느껴지는 기분좋은 설렘 등 우리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각들은 감정과 연결되어있다. 외부의 정보는 오감으로 느껴지고 뇌에서 정리된 정보를 통해 몸의 감각, 즉 감정으로 결과를 가지게 된다. 그 감정을 다시 뇌에서 처리하여 외부의 감각자극으로 - 말, 행동,- 우리는 소통을 하게 된다. 여기서 사유는 우리의 감정과, 표현을 처리하는 과정에 깊게 연계된다. 따라서 우리가 다른 사유를 함에 따라 감정과 표현이 달라지게 되는것이다. 물론 내가 어떤 다른 정신을 갖는다고 눈앞에 있는 빨간 사과가 갑자기 초록색 사과로 보이게 되지는 않을것이다. (향정신성 물질을 섭취하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나의 머리속에 있는 정보들이 나의 감정, 즉 몸의 감각에 영향을 미치게된다. 결국 사유를 달리하면 내가 느끼는 세상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불안장애 등의 문제로 상담을 오래 받았었다. 게슈탈트 기법, 인지행동 치료 등도 결국에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현재의 나에게 같은, 불쾌한/불리한 경험을 주는 트라우마 반응을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고 사고의 습관을 바꿈으로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사유의 변화가 실제 몸의 감각의 변화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사고의 변화로 인해 트라우마에서 사람들이 벗어날 수 있다면? 고통이 사라진다면? 미움도 사라지고 분노도 사라질수 있지 않을까? 분노가 사라지고 고통이 사라지면, 좋음과 싫음이 옅어진다면? 이원론적으로 나뉘어진 세상의 위계가 옅어진다면? 점점 옅어지고 흐려지는 위계와 경계위에서 얼마나 다양한 소통과 새로운 몸의 감각이 탄생 할 수 있을까?

 

요즘 성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생각 정리법, 혹은 철학자들의 말들이 많이 들려온다. 그리고 끝이없는, 성공이라는 알수없는 지점으로 향하기 위해 사람들이 정말 많은 노력하는것을 보아왔다. 나 또한 그랬다. 성공이 무엇인지 생각도 하지 않은채 방청소를 하고 미라클 모닝을 시도했다. 반복과 차이를 생각하며 머리속에서 뺑글뺑글 돌아가는 원통형을 상상했다. 언제 성공에 다다를지 모르니 쉬지않고 뺑글뺑글 돌았다. 그러다 너무 힘들어질때는 누워서 쉬었다. 누워서 쉬다보니 배도 고프고 심심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잠시 도는것을 멈추고 새벽에 케이크를 시켜먹기도 하고 옛날에 좋아했던 노래에 잠겨보기도 했다. 그러다 발끝에 느껴지는 이불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꼈는데, 문득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바람이 솔솔 불고 마루에서 이불은 배만 대충 덮고 가족들의 대화 소리를 들으면서 잠들기전 이불의 감촉이 생각났다. 그 뒤로 잠이 안오는 밤에는 이불을 발끝으로 살살 어루만지다 잠에 들었다. 그렇게 하나 둘 잊고있던 산에서 내려오는 풀냄새, 차가운 아침공기를 데우는 눈이 부신 햇빛, 지하철의 꿉꿉한 냄새를 기억하게 되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게 많았는지 잘 몰랐는데.. 하면서 문득 어떤 문장이 생각났다. 자기자신을 찾아나가는게 삶의 목적이자 여정이라고. 그렇다면 이건 좋은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뭘 자꾸 찾으라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뺑글뺑글 도는게 만약 목적이 있어야 한다면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걸 먼저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성공하기위한 습관이라는 유튜브 제목을 봐도 어지럽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 (근데 아직 편집의 편집은 현기증난다.)

 

감각과 사유; 자기계발

김수빈